고등학교 1학년 때 일본학생이 전학 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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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반개월동안 방황했다.

중학생 때는 내신도 상위권에 들 만큼 학교생활을 꽤 열심히 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똑 부러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입학하고부터는 아니었다. 나는 남고를 가고 싶었다.

배정된 곳은 학교 자체의 평판도 나쁘고 불량한 아이들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한 학교였다.

말했듯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고등학교였기에 기본적인 반항기는 가지고 있었던 데다 입학식 때 실제로 학교를 가보니 근처는 개발이 무기한 연장이 된 상

황이라 흩날리는 모래밖에 없는 황무지였고 학교 자체 시설은 전쟁 후 얼마 안 돼 세워진 터라 운동장이 큰 점 빼고는 매우 형편없었다. 듣기로는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수리해서 쓰고 있다 했다.

더 중요한 점은 그 내가 배치된 반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인간관계를 새로 구축해야 했다.

반 아이들이 정확히 33명이었는데 남17 여16이었다.

아직도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 상황을 기억한다.

나는 오른쪽 창가 마지막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상은 34개였고 내 옆에 앉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이 서로 마음이 맞는 애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친구를 만들 수는 있지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 귀찮고 의미 없어 보였다.

그렇게 반년을 의미없이 보냈다.

여름방학 때는 보충도 가지 않았다.

집에서 책이나 애니를 보면서 놀았다.

개학 날이었다.

썩어빠진 얼굴을 한 채로 등교해 책상에 가방을 걸고 대충 소설이나 읽고 있을 때 즈음 담임이란 사람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옆에는 긴장한 표정의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일본학생이었다. 머리카락은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랑은 꽤 다르게 장발이었고 미모가

대단했다. 평균을 아득히는 아니더라도 꽤 뛰어넘은 정도였다.

담임은 그 여자아이를 소개하며 일본에서 왔다 했다. 사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한국어를 간단한 회화정도 밖에 모른다고 담임이 말했기 때문에 그때는 좋

은 이유는 아닐 거라 추측했다.

그 여자아이는 짧게 미숙한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빈자리를 찾아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안녕.”

그녀가 정말정말 미숙한 한국어로 나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나도 안녕이라고 말해주었다.

조회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꽤 많은 애들이 내 책상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 아이들은 내 옆에 앉은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고 그 아이도 그랬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언어의 장벽은 꽤 높은 벽이었다.

몇몇 아이는 영어로도 시도했지만 입시주의 교육과 일본어식 영어는 호환성이 영 꽝이었다.

대충 몇 마디를 해보고 말이 통하지 않자 서로는 서로를 어색해했고 수업 종이 칠 때 즈음에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나와 그아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당시에 옆을 그다지 보지 않아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을 기다렸을 것이다.

조금 불쌍하다 느꼈다.

수업 종이 친 직후인지 바로 전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녀의 기분을 조금 낫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동안 봐왔던 애니메이션과 따로 조금씩 공부했던 일본어 책을 최대한 기억해내 그래도 이 상황에 맞다고 생각한 한마디를 건넸다.

“お早う(안녕)”

반응은 대단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는데 얼굴이 정말 놀란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잠시 웅얼거리다 아까의 나와 똑같이 おはいよ(안녕)라 되 말해주었다.

내가 그때 살짝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고개를 다시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물론 일본어로.

적당히 알아들었다. 완벽히는 아니었지만, 의미는 정확히 전달됐다.

하지만 조금 장난을 쳤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나라도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에 히라가나로 글을 쓴 뒤 그 밑에 한글을 적어줬다. (나중에 들으니 한글은 쉬워서 금방 배웠다 한다)

입으로도 한글자 한글자 천천히 발음해 줬다.

미안해서 알아들은 척했다.

그녀가 손에 펜을 든 채 해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여러 번 끄덕였다.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은

“어떻게 일본어 알아? 일본어 할 줄 알아?”였다.

나는 ‘조금’이라 일본어로 말했다. 그녀가 밝게 웃었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나는 살짝 선생님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나오는 단호하게 철벽 치는 스타일의 남자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소녀감성을 가진 쪽에 가까운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 흘릴 줄 아는 문학소년이었다.

일본어로 안녕이라고 말을 건 것도 그녀의 관심을 갖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으며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어 장난을 친 것도 멍청한 남자아이가 호감 가

는 여자아이한테 치는 유치한 장난의 일종이었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그 아이는 바로 내게로 고개를 향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 고개를 향했기에 나 또한 그녀를 바라보는 게 예의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노트에 일본어로 한글자 적을때 마다 입으로 한글자 한글자 나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나에게 전한 뜻은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 ~~라니 다행이야!” (~~는 나중에 들으니 ‘짝꿍’이였다)

나는 그당시 ~~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문맥상 짝꿍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생각했다.

일본애들이 진짜 저런 식으로 글을 쓰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 글자를 다 읽은 후 다시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예쁜게 아닌 귀여웠다.

진짜 정말 매우 귀여웠다.

일본어를 알고 있는 것이 그 순간엔 어느 능력과도 대체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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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집에 돌아가며 서점에서 일본어 단어책을 샀다. (그날은 개학이라 그런지 야자를 하지 않았다)

단어장에는 챕터가 있다.

일상, 여행, 비즈니스, 쇼핑 등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하라는 목적인데 나는 학교 챕터가 속한 단어책을 샀다.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있었다.

집에도 일본어책이 있긴 했으나 매우 초급용이라 중학생 때 취미 겸 모두 공부해 놓았기 때문에 다시 펼 이유도 없었고 말 그대로 초급용 문장과 단어뿐이어

서 심화된 대화를 하는 데는 단지 어휘력이라는 제약이 나를 붙잡을 뿐이었다.

책을 산 후 집으로 돌아가 주구장창 외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책상, 의자, 사물함, 선생님, 학생 등등 분명 애니메이션 어디선가 들었던 단어들이라 기억을 재갱신 시키는 기분이어서 외우는

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날은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말라죽은 불가사리 같은 얼굴이 아닌 평범한 남학생의 표정으로 기대심과 설렘을 품고 등교했다.

이제부터 그녀의 이름을 ‘히카루’라고 하겠다. 가명이다.

내가 뒷문을 열었을 때 히카루는 바로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가방을 건 후 책상 서랍에서 책을 꺼내며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한국어 회화책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책은 어디서 구한 거야?’, ‘도와줄까?’, ‘어렵지 않아?’ 등의 말을 걸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참으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내 이성은 그 책을 본 순간 처참히 봉괴하여 히카루의 아침 인사에 기분 나쁘게 대답한 후 서랍에서 빼낸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꽤 오래 봤다. 아침 시간 내내 그것만 봤다.

그런데도 그 책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그 책이 내 앞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문자 따위는 읽을 생각도 없었다.

머릿속은 배신감으로 가장한 질투심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혹시 여성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한 가지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이 호감이 있든 없든 숙맥인 남자한테 한 번이라도 웃어주거나 선의를 베풀면 30분 뒤 그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당신과 할 거 다 하고 결혼을 해 2남

2녀를 가진 후 결혼 10주년으로 가족여행을 가서 캠핑을 하다 막내를 건든 삐리한 중고딩놈들한퇴 칼 들고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다.

넘겨 듣지마라. 진짜니까.

아무튼, 그 당시에 나는 멍청했고 어렸으며 이성이 감정을 누르지 못할 때였기 때문에 뇌는 비이성적인 사고의 결과물로 천지가 돼버렸다.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이랑 그렇게 빨리 대화를 하고 싶으셨나 보네요.’

‘근데 왜 인제야 공부하는 건데? 와 지가 무슨 전학 간다는 소리도 못 듣고 왔나 준비성 대단하네 진짜.’

등등.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확실한 점은 그때의 나는 피들스틱 패시브마냥 주변에 기분더러워짐 +1 옵션을 주고 있었다.

추측건대 히카루도 갑자기 이상해진 내 눈치를 보고 있었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날 하루종일 삐딱하게 지냈다.

히카루가 회화책을 보여주며 발음을 물어보았을 때 나는 대답하지 않으려다 무시해버리면 진짜로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일부로 차갑고 딱딱하게 한 번만

발음해 줬다.

그마저도 그녀가 고마워라고 말하는 동시에 고개를 빠르게 돌려 내 불쾌함을 적극적으로 지금 생각하면 개병.신같이 표현했다.

일본어로 고맙다는 ‘ありがとう[아리가또]’인데 그녀가 ‘아리-‘라 할 때 고개를 홱 돌려 ‘가또…’라 목소리를 줄이며 말한 걸 뇌 속에서 리플레이하며 승리했

다고 쾌재를 부른 나 자신을 난 기억한다.

진짜 씨.발 죽여버리고 싶네.

내가 기억하기로 히카루는 몇 번 더 그러고 나더니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틱틱댄 주제에 오히려 더욱 토라졌다.

그때 즈음이면 이미 일본어 단어책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런 건 더이상 머리에 없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상호보충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불합리함부터 시작해 자기 전까지 현실이 쓰레기인 이유를 줄줄이 불

정도인 게 그때의 나였다.

그렇게 검은 오오라를 주변에 흩뿌리며 석식을 먹고 반으로 돌아와 야간자율학습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히카루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일)무슨 일 있었어? 괜찮아?”

아래와 비슷하게 내가 말했다.

“(한)아니. 아무 일도 없어. 신경 꺼.”

히카루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는 몰라도 그 뒤에 오는 말들은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어휘력도 어휘력이지만 내가 너무 빨리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미안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미안. 일본어로 해줄 수 있을까?”

그다음 내가 한 말로 난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고 히카루의 표정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일)싫은데. 나는 한국인인데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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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하면 안 됐었다.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나는 그 말을 하면 안 됐었다.

내 말을 들은 히카루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 어깨를 툭툭 쳤던 그녀의 손은 공중에 뜬 채 정지했고,

입은 살짝 열려있었으며,

표정은 내색하지 않으려는 당혹감으로 만연했다.

그 모습은 1초도 채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강력한 혐오감과 내가 사람의 마음에 칼을 꽂았다는 끝없는 미안함이 뒤엉켰다.

그때 즈음 그녀가 손을 내리며 말했다.

“(일) 미안해.”

히카루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녀를 잠시 노려본 후 고개를 돌려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바꿨다.

교실은 시끄러우나 둘 사이에는 적막이 시작된 순간 뒤엉킨 감정이 만들어 낸 복합적인 불쾌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사과해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 때, 그것도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 채로, 말끝을 흐리며 말했을 때, 난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이었다.

그녀로서는 내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내 내면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자기합리화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그녀가 마지막이었다.’라면서.

히카루는 나와 다르게 서로뿐만이 아니라 반 아이들과도 교집합을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반이라는 집단에 소속될 수 없지만 히카루는 언어라는 충분조건만 채워지면 언제든지 나라는 교집합을 버리고 떠나는 게 가능하다.

그녀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으며 내가 한국어 공부를 도와줬으면 더욱 빠르게 떠나버리고 그 뒤로는 은혜도 모르고 아는 체도 안 할 거라 나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 채로 난 입을 다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히카루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졸리지 않아도 엎드려 있으면 말을 걸어줄 상대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게 되기 때문에 외로워 보이지 않을 거 같아 고등학교에 와서 쉬는 시간이나 자습시간에는 늘 엎드린 채로 자거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갔다.

그만큼 나는 망망대해 위에 돛단배같이 외롭고 위태로운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는 칼자루도 들고 있던 난 평범하게 지나가던 히카루를 난도질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나는 자각하고 있었다.

분명 알고있었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

그렇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때 즈음에는 그녀와 대화를 하긴 하나 모두 공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급식신청서에) 동그라미나 X표치고 이름 써서 나한테 줘.’, ‘(수학여행신청서)써서 줘.’ 등.

양심은 있었는지 일본어로 말했는데 히카루는 그럴때마다 늘 고맙다고 해줬지만 난 듣기 싫은 척하며 듣는 데로 무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히카루는 정말 착한 아이였다.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는데도 히카루는 나를 피해갈 수 있는 자리도 없었기에 계속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덕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

가방에 곰인형을 달고 있고 샤프 끝에 곰이 달린 걸 보아 곰을 좋아하고 선생님들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수업시간에 딴짓 하지 않으며 늘 한국어 회화책을 읽고 또 읽어 빨리 한국어를 배워 아이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교복의 자동넥타이를 불편해하며 남자애들이 성희롱적인 말을해도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줄 알고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정말 신기해하며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매점은 가지 않고 수학을 잘하며 웃으면 귀엽고 시간관리가 철저한, 정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문제는 그 주 목요일이었다.

과목은 사회, 담임이 수업이었다.

수업을 하던 중 어쩌다 이야기는 일본으로 빠지게 됐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인간의 수업방식을 잘 알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독도에 대한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매우 심화될 때였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담임이란 인간은 웃으며 칠판에서 대한민국 전도를 빼내 동해 부근을 동그라미 치며 히카루에게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함정이었다.

‘독도를 아냐?’, ‘한국땅인 건 알지?’, ‘독도는 한국땅이다.’같은 말도 아닌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어?’라는 말로 틀린 답을 유도했다.

그는 웃고 있었고 히카루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이들은 야유하며 나한테 번역해서 말해주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강요성은 없었지만 그 목소리가 모여모여 나를 압박했다.

나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하다 그 상황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내가 히카루를 쳐다봤고 히카루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에게 선생이 한 말을 번역해 전달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아무 말 하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해야 옳다고 생각했다.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66개의 눈이 그녀를 지켜봤다.

그 66개의 눈이 원하는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저 기다리며 사냥감이 제 발로 함정에 걸려드는 그 순간, 애국이라는 이용하기 쉬운 정당성을 사용해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절대 자신들이 추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히카루는 함정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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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에 걸린 히카루는 당황해했다.

‘시발년이네’라는 욕이 내 귀를 지나쳤을 때 나는 히카루가 한국어를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얘들이 장난을 치듯 보내는 야유와 고함, 욕 속에서 그녀는 어떤 상황인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구든지 영어로 적어서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는 인간은 그 반에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히카루는 내가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길 바랬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 번역을 해서 전하는데도 내 이름이 수십번 씩 불려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매국노라는 소리까지는 듣기 싫었다.

있지도 않은 교집합을 고른 나였다.

수업이 끝나도 상황은 크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던 네 글자의 단어를 이곳에 적고 싶지는 않다.

히카루가 그걸 말하는 시점까지 이 단어가 사용됐었더라면 난 이곳에 그 단어를 지나가는 추억이라 생각하며 웃으며 적었겠지만, 그 뒤로도 그 단어는 사용됐다.

아이들은 히카루라는 이름 대신 그 네 글자의 단어를 이용해 그녀를 가리켰다.

추측할 수 있다시피, 그 단어는 히카루가 직접 말한 단어였기에 아이들이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히카루는 똑똑히 인지했다.

다만 히카루는 그 단어의 앞과 뒤에 오는 말들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후에 그녀가 말하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한다.

그날, 어쩌다 나는 앞문으로 들어올 일이 생겨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히카루는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그녀는 책을 그렇게 읽지 않았다.

‘책을 읽는 척’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나는 히카루를 돕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나를 진심으로 찢어발기고 싶다.

다음 날, 그녀는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온 건지 아이들 몇 명 앞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눌한 한국말로 사과했다.

그 처절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전달자인 나의 역할이겠지만 그렇게까지 이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 당시에 내 기분만 말해보자면, 차라리 내가 목을 그어 자살하고 싶었다.

그녀 나름대로의 해명이 끝난 후부터 아무도 히카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존재했던 소통이 사라진 것이다.

히카루를 부르는 진짜 그녀의 이름은 들을 수 없어지고 그녀의 이름을 대체한 그 단어는 하루에도 여러 번 지긋지긋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방관자인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이 지났다.

9월이 되고도 며칠이 지난 후.

5교시가 끝나고 점심종이 쳤다.

학교 급식실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학년별로 나누어 먹었다.

우리 1학년은 종이 친 후로부터 대략 10분 뒤에 급식실로 내려갔는데 나는 그날 점심을 먹지 않는지 내 자리에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반 아이들이 모두 반에서 나갔다.

히카루만 빼고.

아이들이 없어 적막한 교실 속에서 나하고 히카루만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색했다.

그 큰 교실에 둘만 남아있었고 그 둘은 서로가 붙어있다.

두 명의 책장 넘기는 소리와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존재하는 교실은 진짜 숨 막히도록 어색했다.

그래서 나는 무척 오랜만에 히카루에게 말을 걸었다.

어쩌면 말을 걸고 싶었었던 내가 그 기회를 이용한 건지도 모르겠다.

“(일) 왜 밥 먹으러 안 가?”

그녀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히카루가 사람을 무시하는 아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일) 신청을 안 했어.”

거짓말이다.

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히카루의 급식신청서는 내가 수거해 주번에게 전달했다.

내가 그녀에게 건네줬고 그녀가 그 자리에서 사인한 다음 다시 나에게 건네준 것을 난 똑똑히 기억했다.

그 신청서에는 분명 삐뚤빼뚤한 글씨의 그녀의 이름과 학번 그리고 찬성표 아래 동그라미가 있었다.

“(일) 너 신청했잖아.”

“(일) (네가)어떻게 알아?”

“(일) 내가 봤으니까.”

“(일) 이상한 곳에 그린 거 같아.”

틀리다.

분명 그녀는 찬성표 아래에 동그라미를 기입했었다.

왼쪽과 오른쪽은 나도 구별할 줄 안다.

잘못 됐음을 느꼈다.

“(일) 아닌데. 너 분명 찬성이었어.”

“(일) 잘못 그린 거 맞아. 선생님이 보여주셨어.”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기억을 믿었다.

“(일) 거짓말 하지 마.”

“(일) 거짓말 아니야.”

그녀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그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리 없었다.

설마 하던 가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분노를 담은 단호한 얼굴로 히카루를 쳐다보며 물었다.

“(일) 너도 못 믿겠지.”

히카루는 말이 없었다.

나만이 아닌 그녀도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관절 하나하나마다 화가 끌어 차 올랐다.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언어라는 제약에 가로막혀 아무 시도도 하지 못했을 히카루를 생각하면 농담이 아니라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1편에서 말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나였다고.

나는 아직까지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대책 없이 행동하는 걸 좋아하는 나였다.

얼굴에 분노를 가득 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지를 좋게 변화시켜야지, 히카루한테 점수를 따야지 같은 마음은 솔직하게 말해 일절 없었다.

진짜 화가 났다.

매우 매우 화가 났다.

히카루는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교무실이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외운 단어임에도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아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선생을 보러 간다 했다.

히카루가 당황해하며 장황하게 무엇인가 말했다.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려는 변명 천지였다.

그런 인간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히카루가 싫었다.

고치려고 하지 않고 도망가려고만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의견을 굽히지 않고 반을 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앞에 도착한 나는 멈추는 기색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무실은 우리 반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여섯 분이 근무하셨고 기억하기로는 내가 들어갔을 때 네 다섯 명 정도가 있었다.

이제부터 나의 담임한테는 존칭을 사용하지 않겠다.

그 인간의 자리는 교무실 꽤 깊숙한 곳에 있었다.

내가 교무실에 들어가 그의 자리로 걸어가던 중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히카루라 짐작했다.

담임 자리에 섰다.

담임이 나를 봤다.

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을 뿐이었지 성적이 나쁜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미리 선행학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돼 고등학교에 와서도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수업을 듣지 않아도 선생님들은 나를 비난하지 못했다.

담임도 마찬가지였다.

‘말없이 공부 잘하는 특이한 아이’ 정도가 그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조곤히 왜 히카루가 점심을 먹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정말이다.

이 사단을 만든 그에게 매우 화가 났지만 나는 예를 갖추어 물었다.

그러나 그는 히카루라는 이름이 나오자 한쪽 팔로 손사래를 치며 매우 귀찮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히카루가 나한테 대신 말하라 했냐고.

그의 눈이 옆으로 흘겼다.

히카루를 본 것이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히카루의 급식신청서를 걷었었고 분명히 찬성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나를 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파일들을 뒤지더니 맨 마지막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히카루의 급식신청서였다.

직접 보라는 의미였다.

찬성표의 동그라미는 노골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분명히 흔적이 남아있었다.

지우려면 제대로나 지울 것이지 희미한 동그라미가 오히려 내 화를 부추겼다.

나는 그 인간한테 표를 보여주며 내가 걷을 때는 분명히 찬성표에 동그라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누군가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이 문서를 조작한 거 같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나는 최대한의 예의를 담아 말했다.

“그럼 다시 신청하면 되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꼬치꼬치 신경을 써. 네 일도 아닌데.”

위와 같이 그 인간이 말했다.

“그럼 선생님이 다시 신청하는 방법을 히카루한테 말해주셨습니까?”

내가 감정의 자물쇠를 천천히 풀어가며 말했다.

그 새끼는 어디서 말대꾸냐며 오히려 지가 나한테 짜증을 냈다.

나는 그러든 말든 본격적으로 화를 내면서 그에게 물었다.

학생이 난처해지는 상황을 만든 후 사과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따돌림을 방관하는 게 선생이 할 짓이냐고.

그때 즈음, 다른 선생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천천히 몰려들었다.

내 편은 없었다.

내가 뭐라 말하든 나는 싸가지 없는 새끼였다.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어른에게 대든 나는 싸가지 없는 새끼였다.

소통이란 없는 5:1의 단방향 통신 끝에 담임이 히카루를 불렀다.

뒤에 있던 히카루가 천천히 걸어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담임은 히카루에게 새로운 급식신청서 양식을 줬다.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찬성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담임은 히카루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기억한다.

히카루가 나가고 나는 두드려 맞았다.

뺨부터 시작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맞았다.

이래가지고 남녀합반을 시키면 안된다 서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인생을 망친다까지.

몸도 마음도 아팠다.

-5

내가 오른쪽 날갯죽지 부근을 쥐어 잡은 채 교무실을 나갔을 때, 문 앞에는 2학년 동아리 선배가 있었다.

아무래도 교무실 안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효과음 때문에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고 잠시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 형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 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는 것도, 입으로도 다시 곱씨ㅂ는 것도 싫었다.

내가 형한테 괜찮다는 듯 말하고 내 반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히카루가 있었다.

사람은 모든 순간의 의식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만화나 영화에서는 ‘윽’,’엑’,’억’하면서 단순하게 맞는 장면만 연출되지만 현실에서 내가 그러고 있으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에 부모님한테 혼날 때 머릿속에서는 모든 말에 반박을 하고 있거나 마룻바닥에 나무 옹이를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고통을 하나하나 인지하면서 교무실에 서 있었을 때, 교무실에서 나가면 히카루를 조져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변명만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 않았던 히카루가 싫었다.

최소한 그랬으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전에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으면 분명 도와줬을 텐데 그러지 않은 히카루가 정말 싫었다.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신나게 쳐맞고 나가서 그녀에게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고 단지 흘려보내려고만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 목표는 직접 부탁하는 수고를 겪지 않아도 반은 타의에 의해 완성됐다.

히카루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부어오른 뺨과 교복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피멍들을 그녀는 보인다는 듯이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히카루는 울상이었다.

그녀를 질책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만치로 날아가고 미안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로서 머리가 아닌 감정으로서 마음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에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지금에 와서 추측해보면 우울한 마음을 조금은 없애주고 싶어 그런 표정을 지은 거 같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그녀의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히카루는 손으로 입을 막고 처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달리해줄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그녀가 진정이 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싶었지만 슬슬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복도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녀에게 더 안 좋은 기억이 생길 거라 느낀 나는 우선은 돌아가자고 말했다.

히카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히카루가 울면서 내 뒤를 쫓았다.

반까지 걸어가는 그 10m도 채 안 되는 거리가 그때의 우리 둘에게는 참 길었다.

히카루는 화장실을 들렀다 온다 하여 나만 뒷문을 통해 교실을 들어갔다.

아이들은 없었다.

그 상태로 아무도 안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의자에 앉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채로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앞문을 통해 아까 전의 선배가 들어왔다.

손에는 파스를 들고 있었다.

보건실에 갈 수 없는 내 처지를 안 선배가 대신 얻어온 것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 형은 고마우면 나중에 매점에서 먹을 거나 사달라 말씀하시고 내가 맞은 이유는 묻지 않은 채 반을 나가셨다.

나중에 들으니 대충은 알고 계셨다 한다.

책상 위의 파스를 보며 인간관계가 처참한 수준은 아니라는 걸 자각하고 스스로에게 실소를 보낼 때 즈음 히카루가 반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꽤 진정한 듯 보였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일) 미안.”

히카루가 먼저 한 말이었다.

“(일)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히카루에게 감정을 섞지 않은 채 물었다.

“(일) 싫어할 거 같아서.”

내가 그 말을 듣고 무엇인가 입 밖으로 꺼내려 하는 찰나 히카루는 이어 말했다,

“(일) (너도) 나를 싫어하잖아.”

“(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히카루가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은 빨갰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일) 그날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실수했어. 미안.”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나였지만 사과를 한 그 자체가 나로서는 꽤 큰 발돋움이었다.

“(일) 진짜?”

“(일) 싫어한다면 돕지 않았어.”

히카루가 ‘그렇네…’라고 말했다.

그리곤 아직은 울음이 지워지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몇 주 만에 보는 나를 향한 진짜 웃음이었다.

소유욕이 나를 관통한 순간이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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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부터 말하자면, 소유욕은 충족됐다.

나의 반에서 히카루랑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는 건 나뿐이었고 그녀도 나뿐이었으니까 당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 나이 30이 조금 안 되지만 그때의 확실한 경험을 통해 남녀 사이의 친구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히카루 때문은 아니었다.

히카루도 나도 대학을 가고 싶었다.

당시 그녀 집안의 재정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동전 던지기와 비슷한 확률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웃으며 대학에 가고 싶다 했다.

모르겠다. 내 앞에서만 그랬던 걸 수도 있겠지.

1월 초, 겨울 방학식과 함께 2학년 반편성결과가 나왔던 날.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다.

내가 그녀 곁에 있을 수 없어 불안했던 것이다.

성공했다.

당시 성공률 100%

지금도 100%

이 정도면 꽤 멋진 남자 아닌가?

졸업식 날.

그녀는 일본으로 귀국했다.

히카루는 일본 대학을 갔다.

나는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내가 제대한 날, 그녀가 마중을 왔다.

나는 대학을 졸업 후 빠르게 취직했다.

그녀에게 청혼했다.

장인어른이 반대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몇 번이고 가서 부탁드렸다.

아직도 입국사유서에 복잡한 기분으로 여행에 체크하던 내가 기억난다.

다행히 설득에 성공했다.

부모님이 집을 사주시겠다 하셨다.

한국에서 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녀는 괜찮다 했다.

장인어른이 반대했다.

또 몇 번이고 가서 부탁드렸다.

지겨운 입국사유서를 보면서 복잡한 기분으로 여행에 체크하던 내가 기억난다.

결국에는 입국심사관한테 끌려가 면담까지 했다.

다행히 설득에 성공했다.

결혼비자 신청이 수락됐다.

공식적으로 부부가 됐다.

그녀가 산모가 됐다.

2016년 1월 10일, 내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명함을 준 기억을 되살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라고 했다.

그녀는 계단에서 실족했다.

장인어른이 그녀를 데려간다 하셨다.

보내드렸다.

나를 죽여버리고 싶다 하셨다.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올 생각은 하지 말라 하셨다.

알았다고 했다.

49재는 집에서 보냈다.

처음에는 원망을 했다.

그때 한 명이라도 계단을 이용했으면 그녀가 살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그 후로는 자책을 했다.

내가 그날 집에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좋은 회사에 취직했더라면, 내가 3층짜리 집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날 그녀에게 추우니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내가 전날 쓰레기를 비웠다면, 내가 청혼하지 않았다면, 내가 군대에서 자살했다면, 내가 고백하지 않았었다면, 내가 미안하다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내가 새로운 고등학교에 잘 적응했더라면, 아님 차라리 그때 자살했다면.

지금은 나를 탓하지 않는다.

허망하지만 이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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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금은 편하게 쓰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댓글이나 쪽지로 사실여부를 물어보셨는데, 답글을 달지 않거나 알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5편을 모두 다 썼을 때 6편부터는 그녀와 저의 행복했었던 이야기를 다루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거짓 이야기를 쓰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6편을 쓰려 했을 때, 아직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회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깎아내리고 그녀의 등장과 묘사가 적었던 것도 그 이유였나 봅니다.

그냥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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