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탈영 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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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군번이임

이등병때 100일휴가 복귀안했다 (170일 정도)

너무 오랫동안 도피생활을 하다보니 정말 사람이 무기력해진다는 말이 딱 날 보고 하는말 같더라.

그리고 170일정도 탈영하면서 어느날 내 모습을 보니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살고 있더라.

도피생활하는 도중에 PC방알바, 식당알바, 노가다를 하면서 돈을 모아서 겨우 월세방 마련했는데

뿌듯한 마음보다는 찝찝한 마음밖에 없더라.

나는 군대있을때 고문관이어서 존.나게 구타당하고 그걸 못이기고

100일휴가 복귀안하고 계속 숨어 살았었다.

경찰, 헌병대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난 가발 쓰고 썬글라스끼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완전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170일이란 시간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나는 정말 후회도 100번넘게 했었다.

자수할까도 엄청 고민했다.

그렇게 170일이 조금 지날때 나는 헌병대에 가서 사복 차림으로 자수를 했고,

헌병대 영창 미결수 수용자방에서 1달가량 대기하다가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 선고받고 석방됐음

2015년인 지금 나는 예비군 3년차이고 사회생활을 하고있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평생이고 그때를 잊을수 없을것같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ㅠㅠ..

내 탈영으로 인해서 피해를 끼친

전우들, 간부님들까지 모두 죄송합니다..MEHlE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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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베스트 갔던 글쓴이인데

사실 썰만은 안풀려고 했는데 너네들이 탈영썰 계속 풀라고 해서

올려봄

급하게 쓰는거니 두서없는 글 이해해줘.

탈영 썰이 너무나 길지만 그래도 최대한 요점만 잡아서 쓰도록 할게.

사실 탈영이라는게 전시에는 총살일 정도로 중범죄인데

평시라고 해서 마냥 가벼운 범죄가 아닌

어떻게 보면 전쟁터에서 적군을 함께 무찌를

내생명과도 같은 전우들인데

그 전우들을 통수치고 도망나온 변절자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후회하고 있다.

내가 군생활했던 부대는 최전방이나 전방도 아닌 그냥 수도권에 있는 부대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대가 구타나 부조리가 원래 심했다. 계속 내려오던 전통이기도 하고.

내가 워낙 고문관이어서 밤마다 맞았다.

선임들 중에 어떤 싸이코선임 있었는데 나무에 있는 매미 잡아가지고 먹으라고 시켜서 진짜 입에 넣고 먹을려고 삼키려고 했는데 뱉으라고 해서

먹지는 않고 진짜 먹을뻔한적도 있었다.

그리고 근무때마다 개쳐맞고

초병수칙 못외워서 맞고 북한 계급, 무기, 전차이름 (수색대라서 이런거 외워야함) 이런것도 못외워서 보일러실에 끌고가서 뺨맞고 발로 30분동안 밟힌적이 몇번인지 셀수없을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이거 말고도 정말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난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난 100일휴가 나가서 복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휴가중에 생긴게 아니라 휴가 가기전부터 그런생각을 품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내친구가 여자친구 문제로 탈영했다는 소문 듣고 더더욱 탈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획에 옮겼다.

100일 휴가 나와서 엄마가 따뜻한 밥이랑 맛있는 국 끓여주시는데

정말 나는 맛있게 먹고도 난 부대 복귀안하고 숨어 지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방에 들어가서 혼자 쳐울었다.

아무튼 나는 휴가 복귀날

군복을 입고 따로 사복과 썬글라스와 가발과 모자를 몰래 챙겨서

부모님께 큰절 올리고 집을 나섰다.

(원래는 전라도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서 내려서 지하철 갈아타고 부대 복귀해야함.)

나는 기차타고 용산역까지 간다음에 CCTV 피해서

신용산역으로 간다음에

신용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듣보잡 역에 내렸다.

그리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택시안에서 군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긴급히 1호선 듣보잡역에 다시 내렸다.

그리고 나는 1호선을 타고 천안행 방향을 타고

경기도 평택에 있는 친구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내가 한 1달은 지냈었다.

평택에 미군기지, 공군기지가 있어서 가끔 헌병대들 보면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긴 했지만 설마 다른 인간으로 변신한 나를 못알아보겠지 하고 안심하곤 했다.

그렇게 평택에서 한달을 살면서 알바를 하여 서울로 거처를 옮겨서 숙식 제공되는 노가다를 뛰었다.

노가다를 뛰고 숙식제공되는 식당알바도 하면서 돈을 어거지로 모아서 170일이라는 긴시간동안 도피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월세 보증금 내고 방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렇게 쌔빠지게 돈벌어서 방마련해도 뿌듯한 마음보다는 너무 찝찝한 마음만 있더라.

나는 부모님도 너무 보고싶어서 가끔 이상한 동네 가서 공중전화로 엄마 목소리 듣고 끊곤 했다. 엄청 눈물 나더라..

진짜 도피생활하면 사람살짓이 못된다는게 부모님 생각이 너무 난다..

보고싶어도 찾아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더라. (집근처에 헌병대들 잠복근무함)

그렇게 수백번 후회하고 나는 자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헌병대 영창 미결수 수용자방에서 한달을 대기하다가 재판을 받았다.

사실 그 한달동안 나는 하루에 10장씩 반성문 적었고, 다시는 탈영을 안하리라, 동료들,간부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앞으로 군생활 충실히 열심히 하겠다, 기회를 달라,

이런식으로 반성문을 썼고

부모님께서 주변사람들에게 탄원서 수십장씩 받아서 오시더라.

재판날 판사가 정상참작할 기미가 보였다고 판단했는지 용서해주시더라.. 집행유예 2년 (징역1년)

진짜 판사님께도 너무 감사하지만

그때 판결하기 전에도 우리 부모님이 가져온 탄원서 보고 난 눈물이 멈추지가 않더라.

그리고 너무 죄송한 마음에 아무말도 못했다.

나는 군생활 복귀해서

탈영병 이라는 낙인이 계속 찍혔지만 그래도 일병때도 이등병처럼 먼저 마대 가져와서 생활관 엄청 닦고

청소시간이나 작업시간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잘보이려고.

그리고 나는 복귀하자마자 그때 중대장님이랑 대대장님이랑 찾아뵙고 죄송하다고 말하려고했는데

그 간부들이 오히려 나한테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더라. 구타 때문에 탈영한줄도 모르고 방치 해놓은것같다고 자기 책임이 크다고 하시더라.

진심 무릎꿇고 사죄해야할 사람이 난데.. 당황했다 정말

그리고 같이 군생활 했던 선임들 분대장 포함해서 다 영창갔더라.

진심 나때문에 이렇게 피해 끼친거에 대해서 난 벌을 덜받았다고 생각들더라.

긴글 읽어줘서 고맙다.

앞으로 그시절 생각해서라도 사회생활 열심히 하련다.

너네도 힘내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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