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면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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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전설적인 선동열 각동님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준수한 방어율 아니 학점으로 졸업한 나는 취업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과연 메이저리그 1선발급의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의 방어율 아니 학점을 가진 내가 과연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을까.. 조교 선배는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 (과에서 당당하게 1~5 선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 지난 4년을 평가한 한 장의 종이를 보며 열심히 이곳 저것 가리지 말고 이력서를 제출해보라고 진지하게 충고해줬다.

그래서 정말 이곳저것, 찬밥, 더운밥, 한국회사, 외국회사, 사무직, 영업직 가리지 않고 우리는 열심히 이력서를 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최소한의 면접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와 친구들은 현실을 외면한 채 조상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이국적인 외모의 이력서의 사진이 문제다. 상투적인 첫 문장만 봐도

뻔한 내용의 자기소개서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학점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나도 첫 장 이력서에서 어필할 수 없다면 두 번째 장 자기소개서에서라도 팔색조 같은 나의 매력을 아낌없이 뽐내보자! 하는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기존에 잘 썼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의 상투적인 멘트 (인자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를 벗어나 ‘일하지 않는 자 밥 먹을 자격도 없다’며 일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아버지와 ‘그렇게 말하는 너부터 굶어라’하시며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신 어머니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는 내가 읽어도 그 당시 (2000년대 초반)의 답습을 깬 파격적이며 읽는 사람을 배려한, 많은 자소서를

읽으며 지친 그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줄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소서였다. 그리고 그 시기가 아마 내 인생에 첨부 파일이 있는 메일을 이곳저곳 스팸메일처럼 가장 많이 보낸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읽는 사람의 무미건조한 하루에 웃음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은 배려심있는 자소서를 읽은 사람 중 나를 보고 싶어 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못생겨서 그런가 보다 하며 포토샵으로 태국인을 평범한 가부키맨으로 만드는 기적의 작업을 행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서류전형 합격이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양복이나 한 벌 해 입으라고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보내 주셔서 면접관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국내 최고의 브랜드 파크랜드 양복을 아울렛에서 7만 원에 구입했다. 함께 옷을 사러 간 한 친구는 마치 격동의 70년대 중동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 같다며 칭찬했고, 다른 친구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나를 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국가는 태국이고 종목은 세팍타크로라며…

내가 서류전형을 통과한 회사는 햄과 가공육 등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었다. 면접 전날 그 회사에서 판매하는

각종 햄과 가공육 등을 마트에서 죄다 산 뒤 친구들과 함께 먹으며 제품을 분석했다. 아마도 면접이 목표였지만 우리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고기와 소시지를 먹은 날이 아닌가 싶다. 제품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 친구들을 상대로 예비 면접도 진행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녀석들은 촌철살인의 질문을 했.

1. 혹시 조상님 중에 외국인 정확히 말하면 동남아 쪽이 있으십니까?

2. 우리 제품 중에 인상적인 제품은 어느 것 입니까? 맛있는 햄은 어떤 것 이었죠?

3. 사내 연애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 줄줄이 비엔나는 왜 칼집을 내야 하는가?

그리고 운명의 면접날…

할일 없는 친구들은 처음으로 면접을 보는 나를 응원해주기 위해 나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면접장을 향했다. 친구들은 긴장하지 않고 어제 연습한 대로만 말하면 넌 합격이라며 내게 용기를 줬다. 그리고 얼굴과 목에 비비크림을 발라주며 ‘이제 너도 한국인 같아!” 라며 나를 응원해줬다. 하지만 첫 면접이라는 부담감은 면접장이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가슴에 번호와 이름표를 달아주는 아름다운 여직원분의 모습을 보며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졌다. 면접 대기실에는 다양한 취업 준비생들이 있었다.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는 사람, 출력지를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람, 화장을 고치는 여성 지원자 그리고 그 사람들과 광경을 두리번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나…

면접은 4명씩 들어갔는데, 이제 곧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긴장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 안의 황룡이 그 중요한 순간 오장육부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제 먹은 각종 햄과 소시지들이 문제였나..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닭살이 돋기 시작하고 짧게라도 한 번 황룡을 방사하고 와야 하나 고민할 때 나를 포함한 지원자들의 이름이 호명됐다.

‘잠시만 버텨줘다오!’라는 생각으로 다른 면접자들과 함께 네 분의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는 면접장으로 들어왔다. 면접관들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세 번째 앉아있던 나는 앞의 두 명의 자기 소개를 들으며 나의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대학을 졸업한…” 앞서 자신을 소개한 지원자들과 비슷하게 나를 소개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 세상을 향해 똬리를 틀고 싶어 하는 황룡이 살짝 뜨거운 입김을 ‘피식 피식’ 하며 그것도 두 번에 걸쳐 내뱉었다. 소시지의 기운을 잔뜩 받은 황룡의 열기가 면접장에 은은히 퍼졌고 면접관과 면접자 모두 조금씩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 황룡의 주인이 아닌척하며 태연하게 나의 소개를 마쳤다. 황룡의 기운에 눌린 면접관 한 분은 “어떤 새끼가 면접 와서 방귀나 뀌고…” 하는 표정으로 잠시 시간을 요청한 뒤 창문을 열고 환기한 뒤 마지막 면접자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그리고 면접자들에게 하나씩 개별 질문을 했는데 첫 번째 지원자에게는 최근에 읽은 책을 그리고 두 번째 지원자에게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그리고 내가 머릿속으로 최근에 읽은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용돈 주실 때는 아버지, 밥 줄 때는 어머니라는 답변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내게 우루과이 라운드가 한국 경제 특히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물어봤다.

“응? 우루과이 라운드?” 그건 뭐지.. 머릿속에 짧게 우루과이, 파라과이, 우루사 등의 단어가 오갔지만 난 정확히 우루과이 라운드가 뭔지 몰랐다. 결국 나는 남미 우루과이의 값 싼 농산물이 수입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한국 농업이 망합니다! 특히 고추농사를 짓는 우리 집은 완전 망합니다!”  라며 면접관들에게 애국심을 애향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의 발언을 들은 면접관 네 분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 새끼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놈이 우루과이 라운드를 모르네..”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다음 질문은 특기였다. 첫 번째 지원자가 외국어 능력이라며 영어로 자기소개하자 두 번째 지원자는 “풋~” 하는 표정으로 더 능숙한 실력의 영어와 불어 2개 국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했다. 이런 제길.. 난 토익 점수도 없는데 자기소개를 두 가지 버전의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고 하며  고향 사투리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생각했던 특기를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 나는 준비한 특기를 말씀 드렸고 면접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한 나의 특기는 고추감별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고추밭에서 놀고 자란 나의 진정한 특기였고 진지했는데… 그리고 “적어도 저 자식은 내가 제꼈군” 하는 세 명의 표정과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어젯밤 친구들과 함께 분석했던 그 회사 햄과 가공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면접관들은 황룡 기운의 정체를 파악한 듯했다. 입사자 중에 직접 먹고 와서 그 소감을 이야기한 지원자는 처음이라며 극찬하셨다.

그리고 그 뒤 그 회사에서 내게 연락은 더 오지 않았다. 아.. 불합격이라고 연락 왔구나..

훗날 내 첫 회사는 교수님 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닭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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